난장이가 제법 커서 오지로 간 썰
내친김에 하나 더 풀어 보려니
꽤 많은 생을 살았다고 생각 했는데 이것 저것 고르다 보니
정작 풀어볼 만한 보따리는 많지 않구나…
오래 전
어느 오지의 마을
장사를 해 볼 요량으로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퇴직금은 회사 물품으로 받고
모아둔 돈 박박 긁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이제 스물일곱.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 습성 모두 다른 오지 중의 오지
먹고 사는 것이 숙제인 땅.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야생화들 군락을 이루고 깨끗한 하늘엔 푸른 구름이 바람에 일렁이지만
특공모기에 뜯기는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얼른 꿈을 깨야 한다.
때론 사막의 호수에서 통나무로 잉어를 때려잡아 보기도 하고
끝없는 해바라기 밭의 노란 융단을 발 밑에 두고 보기도 했지만
녹색풀이 하나도 없는 밥상에서 칼을 들고 뜯는 양고기의 맛처럼
참 외롭고 고단한 삶의 뒷켠에서
나의 삶 중 가장 행복했던 그 꼬투리를 여러분께 풀어 보려한다.
혹 이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주둥이로 이야기를 들었던 지인이 계시다면
모른척 해 주시기를 …
몽골족 전통악기 중 마두금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생긴 모양은 우리나라 아쟁과 비슷하고 켜는 방법도 유사하다.
말의 머리모양을 악기의 상단부에 조각해 놓아 마두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음역폭이 넓어
한 마리의 말이 힘차게 달리는 느낌부터 수백 마리의 말 떼가
마치 징기스칸의 명령으로 유럽 평정을 위해 초원을 내달리던 장엄한 경관을 소리로 들려주기도 한다.
“마일라수”
악기 연주자의 실명이다.(당시 20세 정도, 전국 대회 준우승자)
“뭉크토야”
전통여가수의 실명이다.(당시 30세 정도, 이름 없는 무명가수)
“초원백”
몽골지방 소주(백주)의 이름이다.
이 셋이 이제는 나를 이끌어 잠시 육신의 고통을 잊게하고
모니터에 잠시나마 문자와 숫자대신 향락을 주려 한다.
토야를 만난건 친구들과의 저녁 술자리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나름 영업이라고 점심부터 먹고 마신 술로 눈은 풀리고
이제는 내가 술을 먹는지 술이 나를 먹는지
아니면 이미 내가 술인지…
그 사이로 들리는 참 낯익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특이한 노랫가락…
노래방이라면 혼자서 세시간을 불러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시절
그 노래는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
꿈을 풀어 헤치고 하늘을 날아 우는 새처럼 고고하면서도 투박한 것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아닌가…(그처럼 친숙하게 취했다는…)
손짓 발짓으로 친구에게 다시 보고품을 전달하여
두어 번 같이 만나 친해지게 되고
토야의 소개로 마일라수까지 소개받는 로또 1등을 하게 되어
이 수상한 셋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첫 만남의 첫 곡
이럴수가
그 감성을 어중이 떠중이 아는 단어를 열심히 골라 설명을 했더니
애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래진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 아마 그 곡의 내용과 일치하는 설명을 했나 보다.
어허 참 이렇게 신기할 수가…
그 만남의 두 번째 곡과 세 번째 곡까지 내가 모두 딱 맞게 찍어냈다.
이건 신들린 감성이 아닌가~ ㅋㅋ
이렇게 맺어진 셋의 인연은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악기를 부르고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소주를 부르는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나의 뇌 어느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이 추억.
그 추억의 소용돌이 가운데
마치 태풍의 핵 인양 고고하게 자리잡아
때론 새처럼 때론 구름처럼 그렇게
취하게 한다.
그 문화는 화장실이 따로 없다.
그래서 방 안에 요강도 있다.
사는 형편이 팍팍했던 토야는
마일라수를 배웅해 주고는
방안 구석에서 뒷물을 했다.
난 한 곡조에 두서너잔씩 마신 60도 백주가
이미 토야의 치마끈과 저고리를 풀어
거미줄처럼 어지러이 흩어 놓았고
볕좋은 봄날 봉분사이서 잠들던 어린시절을
그녀의 봉그란 가슴 사이에서 회상하며
그 따스함을 그리워하며
그 따스함을 부비적 거리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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